트라우마와 미술치료
최근 튀르키에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큰 재난 이후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까지도 트라우마를 겪곤 하지요. 이번 HF웹진 2호 H.liFe에서는 이 트라우마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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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란?
트라우마는 우리나라 말로 ‘외상’이라고도 합니다. 넓게 이야기해서 자연재해, 전쟁, 학대, 성폭행, 죽음 등과 같은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경험이 남긴 정신적인 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사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 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 심각한 불안과 무기력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받기도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혼자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 기관을 찾아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에게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거나, 가까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러한 사건을 겪은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경찰이나 구조대원, 의료진과 같이 위험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경우에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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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남겨진 고통의 흔적들
사람의 정신은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에 웬만한 충격과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거나 잊혀 집니다. 마치 몸의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서 잘 아물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적인 회복이 어려운 경우이지요.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공포가 우리의 감각 기관에 저장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상황이 놓이거나 그 상황에 대해 생각만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몸의 반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악무는 습관, 가파른 호흡, 나도 모르게 온몸이 경직되는 증상 등 이렇게 몸에 저장된 상처는 생각보
다 강하고 끈질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을 몸에 지니고 살면서도 그것에 익숙해져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곤 합니다. 이렇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외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트라우마의 치료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자기 내면에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고 돌보는 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과거에는 자신이 경험한 외상적 사건을 다시 떠올리도록 하여 아주 점진적으로 노출을 시킴으로써 부적응적인 반응을 없애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억지로 대면하게 하는 치료 방식보다는 지금 현재 경험하고 있는 불안, 호흡의 불균형 등과 같은 증상에 초점을 맞추어 안정을 찾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도록 돕고, 몸의 긴장을 줄이는 등의 안정화 기법들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충분히 안정된 후에야 트라우마의 기억을 다시 처리하며 일상에서 어떻게 생활할지에 대해서 다루게 되지요. 이때에도 안전한 방식으로 트라우마 기억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미술치료가 트라우마 치료에 유용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 상담을 받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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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 치료에 유용한 미술치료
미술치료 장면에서 내담자들은 미술 작업 안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투사하여 표현하곤 합니다.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것들이 그림 속에 담기곤 하지요. 특히 아이들은 심리적인 방어가 적기 때문에 작품 속에 마음이 그대로 반영됩니다.
필자도 과거 연평도 폭격 사건이 있었던 시기에 그 사건을 겪은 연평도 아이들을 상대로 집단 미술치료를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아이들의 그림에는 그 당시의 공포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트라우마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위협적으로 경험될 수 있지만, 미술 작업은 보다 안전하게 트라우마를 표현할 수 있는 매개가 되어주지요. 그렇게 표현된 이미지를 가지고 미술치료사는 내담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새롭게 이미지를 재구성해 보도록 돕습니다. 특히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내담자들은 트라우마 사건을 자신이 절대 다룰 수 없는 매우 크고 끔찍한 이미지로 기억하곤 합니다. 미술치료에서는 그러한 기억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다각도로 관찰하고, 멀리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크기를 줄이거나 봉인해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미술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내담자에게 보다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정보로 다시 입력됩니다.

자, 트라우마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셨나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계시다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만큼 힘들지는 않아도 가끔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럴 경우 유용한 미술 작업을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 일상의 상처를 관리하는 미술 작업
첫 번째는, ‘선 따라 호흡하기’입니다. 호흡은 과도하게 각성되어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진정시킵니다. 혼자서 호흡을 잘 통제하는 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에 이미지를 활용하여 호흡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 번 따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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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그림1> 종이 위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을 천천히 긋습니다. 그리기 도구는 가능하면 부드러운 것이 좋습니다만, 볼펜이나 색연필 등도 괜찮습니다. 선을 긋는 동안 숨을 천천히 들이마십니다.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선을 그을 때에는 숨을 깊이 내쉽니다. 방향은 바뀌어도 상관없지만, 숨을 내쉴 때에 조금 더 천천히 선을 긋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종이를 한가득 채워가다 보면 어느새 불규칙하고 빠르게 내몰아쉽던 호흡이 가다듬어져 있는 것을 경험하실 겁니다. 하루 중 힘들었던 사건이 떠오르더라도 이 작업이 안정적으로 잘될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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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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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그림 2> 만약 상황이 되신다면 종이를 물에 흠뻑 적시고, 그 위에 물감으로 같은 작업을 하면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것에 보다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림 3> 두 번째 제안하는 작업은 ‘그림일기’입니다. 멋진 그림을 그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느껴지는 대로 색을 칠하거나 어떠한 형태를 그려도 좋습니다. 그렇게 그림만 그려도 좋지만, 저는 되도록 그림을 그리면서 느껴지는 감정, 생각들을 글로 적어보는 것을 권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몰랐던 내면의 상처나 생각을 발견하게 되고,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기도 합니다. 가능하다면 힘들었던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며 그것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 보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늘 안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들을 만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어릴 적 가정환경 자체가 트라우마로 남겨진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에 의해 새겨진 상처는 치료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통해 얻은 상처를 잘 치료하셔서 보다 건강한 삶을 사시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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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임경 미술치료사
저서 : ‘나는 마음을 그리는 미술치료사입니다’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 임상미술치료 박사 수료
서울여자대학교 특수치료전문대학원 미술심리치료 석사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현, 하루아트테라피 심리연구소 소장
전, 서울 광운대학교 심리건강증진센터 (구 참빛아동지원센터) 미술치료사
전, 허그맘 & 허그인 분당 심리센터 미술치료사
전, (주)공감 느티나무심리상담센터 미술치료사
전, 새론마음크리닉의원 미술치료사
전,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하늘꿈학교 심리미술교사